삼승의 미지수 x, 삼승 《상상도》(Imaginary Scheme) 리뷰, 문래예술공장, 2020

거대한 휘장처럼 공간의 삼면에 길게 드리운 이미지와 작은 오브제들은 피아노와 드럼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원과 정사각형, 반원, 원뿔, 비정형 도형들로 구성된 이미지들의 색과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소리를 쏟아낼 악기들과 조용히 놓인 사물들 사이에는 약간의 긴장이 감도는 듯했다. 블랙박스는 얼마든지 가변할 수 있는 검은 공간이 아니라 단단한 입방체처럼 보였다.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에서 열린 삼승의 《상상도》는 드러머 서경수와 작곡가 이민휘, 판화가 최경주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도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공연이었다. 서경수의 탄성 좋은 리듬, 이민휘가 구현해온 유려하고 섬세한 음악, 최경주가 형성해온 색과 형의 매력적인 긴장은 서로의 영역을 절묘하게 보완해줄 것 같았다. 이 세 사람은 삼승을 ‘그림+소리 프로젝트 ( )3’라 칭하며, 서로를 부러운 눈으로 참조하던 미술 및 음악의 역사와 자신들을 변별한다. 이 공동프로젝트의 이름은 내게 이렇게 읽힌다. 이것은 미술을 참조한 음악도 아니고 음악을 참조한 미술도 아니다. 말하자면, 그림과 소리가 더해진 데다 괄호 안에 숨겨진 무언가가 세제곱된 것이다. 이 이름이 곧 그들이 만드는 프로젝트의 형태라면, 《상상도》의 입방체에 남아있던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된 그림과 소리, 그리고 괄호 안의 미지수가 삼승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최초의 x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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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 〈맞선〉은 어떤 교착상태를 떠올리게 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리듬으로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만 같았던 피아노와 드럼의 연주는 어쩐지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들이 왜 맞설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 팽팽한 긴장감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르지만 모든 것은 정지해있는 것 같았다. 이어진 〈맹점〉에서는 모두들 한층 유연해진 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미지도 빛과 함께 빠르게 움직이며 세 개의 운동이 마치 서로의 스파링 파트너가 된 것처럼 각자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울상〉에서 드럼은 3박자 계열의 리듬을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아주 복잡하게 무거워지며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작은 물음표가 우아하게 떠 있는 것 같았던 〈황당한 면〉은 내게 어떤 서사 속의 한 장면을 상상케 했다. 

공연의 출발점에서 나는 분명 정지된 조형을 떠올렸지만 점점 소리와 이미지가 제각각의 리듬으로 운동하기 시작한 뒤로는 조형과 그 이면의 이야기를 교차해 연상하게 됐다. 이를테면 초반에는 선과 점에 초점을 맞추어 들었다면(맞선, 맹점), 다음으로는 어떤 감정에 주목해보고(울상, 황당한 면), 이어서는 다시 무언가 전위되거나 역전되어 있는 듯한 형태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거나(못 볼 꼴) 빠져있는 축이 무엇일지를 찾아보는 식이었다(빈축). 쉼 없이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보지만 이 각도 저 각도 아닌 것인지, 무언가 확실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마지막 곡은 조형과 그 이면의 이야기가 한데 뭉쳐져 있는 듯했다(안 될 각).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처음엔 돌처럼 단단했던 이미지와 음악에 많은 탄성이 생기는 것 같았다. 평면이 입체가 되고 그 입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복잡도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듯이, 음악은 서서히 몸을 풀어가며 더 크게 운동했고 오브제와 이미지는 빛을 마주하며 형과 색을 바꾸거나 그림자를 통해 몸집을 거대하게 키웠다. 피아노와 드럼, 이미지들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그들의 배열을 바꿔갔다. 때로는 피아노가 주도하는 선율이 확실히 모든 것을 이끌었고, 때로는 드럼이 분절하고 쌓아올리는 리듬이 그 시간을 관장했고, 때로는 형형하게 빛나는 이미지와 조형이 그 음악의 무드를 뒤덮었다. (그리고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그 누구도 앞서지 않은 채, 서로의 즉흥적인 움직임이 한 장면 안에 공존하는 듯했다.)

《상상도》는 점을 선으로, 선을 면으로, 면을 입체로, 입체를 동세로, 공간을 시간으로, 혹은 시간을 공간으로 변환하고 뒤틀어본다. 공연은 시간 위에서 펼쳐지는 긴장과 해결만큼이나 공간 위에서 형성되는 조형과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그 시간축과 공간축이 만나는 교차점이 바로 이 공연인 것만 같았다. 그 확산세와 너른 변화폭을 보고 있으면 서경수와 이민휘와 최경주의 관계가 결코 나란히 놓인 1:1:1의 병렬적 관계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은 세 개의 서로 다른 단면이 만나 입체를 이루는 과정, 혹은 같은 것이 세 번 곱해지며 순식간에 먼 곳으로 훌쩍 뛰어가며 긴 거리를 단숨에 주파하는 세제곱의 관계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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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의 작업은 내게 서로의 상을 변주하거나 증폭하며 다른 차원으로 변환해보는 시도로 읽힌다. 그들이 품고 있는 상은 서로 다르겠지만 그들은 모두 추상의 언어를 다룬다. 그들은 무언가를 구성하고, 변주하고, 확장한다.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그들의 작업은 형과 색, 정지와 운동, 소리와 이미지 사이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며 힘의 균형을 이룬다. 공연과 음반, 인쇄물이라는 세 형태로 이합집산하는 《상상도》는 그 결과물의 형태에서도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다. 공연이라는 교차점에 모여들었을 때만 발견할 수 있는 상이 있는 것처럼, 보지 않고 들었을 때만 떠올릴 수 있는 어떤 허상, 혹은 듣지 않고 보기만 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리듬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어떤 하나의 완성본으로 귀결될 설계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앞으로 가변할 수 있는 상상도를 구성했고, 그 안에서 서로를 참조하고 유희하는 관계 속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그 최초의 x는 무엇이었을까. 이 작업은 여러 형태로 발산되고 있지만 그 작업을 추동한 첫 번째 힘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바깥에 드러나있지 않은 것 같다. 작업 과정을 각자의 언어로 상상해보라는 삼승의 제안처럼, 그들이 택한 작업의 프로세스와 그 관계,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던 팽팽한 힘에 대한 추측이 남아있을 뿐이다. 즐거운 표면의 감각 아래 어떤 작은 물음표 하나가 남아 있고, 이것은 내게 삼승의 작업을 조금 더 여러차례 곰곰이 되돌아보게 하고 그 이후를 상상하게 한다.

아마도 삼승은 그 괄호 안을 미지수의 영역으로 남겨둔 채 계속해서 또다른 입방체를 형성할 것이다. 그 안에 놓인 이미지의 색과 형은 때마다 달라질 것이다. 소리는 더욱 크게 점차 팽창하거나 때로는 압축될 것이다. 어쩌면 때로 그 입방체들은 서로와 긴장관계에 놓일 수도 있겠다. 삼승이 제시할 결과물이 늘 같은 형태는 아니겠으나 그럼에도 거기엔 언제나 그 입방체의 핵심부를 관통하는 어떤 요인이 있을 것이다. 몇차례의 결괏값이 쌓여나가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미지수 x를, 혹은 삼승의 공식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