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리히터와 영화, 「숨은 현대음악 찾기」 연재, 『클럽발코니』 100호, 크레디아, 2021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가 지구에 도착했다. 그것도 전 세계 곳곳에 열두 척이나. 도대체 왜 왔는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인류가 이 외계 존재들과 차근히 소통하며 알게 되는 것은 이들이 시작과 끝이 모호한 원형의 기호를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테드 창의 SF 소설을 영화화한 <컨택트>의 이야기다.

미지와 조우하는 이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는 작곡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음악 ‘on the nature of daylight’가 흘러나온다. 느릿한 6~7분가량의 이 연주곡은 그저 편안한 도입 음악이라기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그 선율에는 뚜렷한 목적지가 없어 보였다. 음악은 무언가를 공상하는 것 같기도, 회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속음과 쉼표가 교대로 등장하는 이 곡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가도 어디로도 흐르지 않는 듯했다. 영화 속 미지의 존재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자극적인 도입도, 대단한 종지도 없이 그저 나긋하게 이어졌던 리히터의 이 곡은 <컨택트>의 시작점과 끝점을 원형으로 잇는 역할을 했다. 영화의 이야기, 형식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음악과 영화는 오만 가지 방법으로 만나며 새로운 맥락을 형성하곤 하지만, 그 둘에게도 꼭 맞는 짝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까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 중 하나다. 포스트-미니멀리즘, 앰비언스, 전자음악을 자유로이 횡단하며 솔로 앨범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무용음악과 여러 극음악, 그리고 영화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갱신되는 그의 작품 목록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영화음악이다.

그가 영화음악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부터였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질적인 형식을 결합한 이 영화는 참전 군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참혹한 전쟁의 기억과 그들의 꿈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리히터의 음악은 몽롱한 신시사이저 소리를 들려주다가도 어느새 서늘하고 날카로운 소리로 바뀌었다. 그의 음악과 함께라면 기록과 기억, 환상과 현실도 균열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 같았다.
언제나 매의 눈으로 음악가들을 찾아 나서는 영화인들이 리히터를 놓칠 리 없었다. 드라마, 스릴러, SF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러브콜이 날아왔고, 리히터는 고립된 숲 속에서 살아가는 자매의 이야기인 <인투 더 포레스트>, 로비스트를 둘러싼 정치 스릴러 영화 <미스 슬로운>, 전쟁 이후 황폐해진 현실을 직시하는 <로어> 등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 음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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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1656133&memberNo=10824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