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의 영혼들」, 장르교환, 문학3, 창비, 2021

문학지 2021년 1호(통권 13호)에 수록된 손유미의 시 ‘탕의 영혼들’을 읽고, ‘장르교환’ 코너를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했습니다.

손유미 – 탕의 영혼들
http://www.munhak3.com/detail.php?number=1896&thread=23r13r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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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의 영혼들 – 신예슬

세신. 몸을 깨끗하게 씻는 일은 단순히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제의적 행위다. 지나간 시간을 비워내고 묵은 때를 한꺼풀 벗겨내기 위해 향한 곳은 바로 목욕탕. 어제와는 다른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모아 목욕탕에 입수한다. 쑥탕 열탕 해수탕 게르마늄탕을 신나게 오가다 문득 탕 속에서 몸을 잃어버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누군가는 탕 속에 영혼들이 살고있다고 했다. 따뜻한 온기에 홀려 온몸이 나른해지는 동안, 탕 속의 영혼들은 사라져 가는 내 몸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얻으러 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무언가를 내어주거나 빼앗기는 일은 탕 속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어떤 탕에 대단한 효능이 있다는 것처럼 어떤 음악엔 이상한 힘이 있어 보인다. 물론 그게 진짜로 효험이 있는지 아닌지, 선한 기운인지 아닌지, 때 비스무리한 어떤 것을 없애줄지, 내가 음악을 가져다 듣는 건지 음악이 무언가를 말할 상대가 필요해 나를 부른 것인지, 이것을 듣는 대가로 시간 말고 또 다른 무엇을 내놓아야 할지, 음악에 담긴 것이 순수한 선의인지, 혹은 경각심이 흐려진 사이에 몸을 빼앗으려는 악당의 계략인지 곰곰이 돌이켜보자.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힘에 이끌려 음악을 들어보고야 말겠다면, 누군가의 몸을 빼앗고 그 자리를 차지한 영혼들이 탕 속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쑥탕
모트 가슨(Mort Garson) – 플랜타시아(Plantasia)

식물의 생육과 번성을 장려하는 모트 가슨의 이 음악엔 자라나는 새싹의 첫 번째 떡잎부터 식물애호인의 기쁨, 물을 가득 머금고 바쁘게 자라나는 식물의 무시무시한 생명력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산뜻한 음악은 식물가루와 액체가 뒤섞인 쑥탕보다는 사람 곁에서 햇볕 쬐며 지내는 화분들에게 더 잘 어울리지만, 이 녹색 친구들의 효능은 아무렴 비슷하겠다. 식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왜인지 생산성도 증대해준다고 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힘을 누릴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식물은 햇빛과 물을 먹고 자라 우리에게 모종의 힘을 안겨준다. 흙과 빛과 수분과 식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등가 교환이 있고, 인간과 식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힘의 교환이 있을 텐데, 인간과 음악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환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파릇한 음악이 귓가에서 자라나는 동안 우리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그건 뭘까? 

열탕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 소년의 노래(Gesang Der Jünglinge)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과 환상이 담긴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따르면, 우상을 숭배하지 않아 왕의 분노를 산 소년 세 명과 다니엘은 불구덩이에 던져진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지킨 이들의 마음에 감동한 신은 그들을 화염으로부터 지켜내고 멀쩡히 그곳을 빠져나오게 한다. 찬란한 생명을 되찾은 그들은 신을 찬양하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린다. 

슈톡하우젠 ‘소년의 노래’는 이 기적의 순간을 음향화한다. 거대한 화마에 뒤덮였기 때문인지 말과 목소리들은 조각조각 흩어져 사방에서 들려오고, 분절된 성부 사이에는 전자음들이 파고든다. 이 불가마 속 소리들은 어쩐지 깊은 물 속 소리를 닮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믿음을 증거한 네 사람은 생명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까지 얻었다. 그런데 이미 기원전에 종결된 이 사건이 어떤 믿음 아래에서 되살려진 것인지, 이것이 소리로 재생되기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년의 노래’ 속에서도 과연 다니엘서의 이야기처럼 네 사람이 온전한 신체로 걸어 나왔을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수탕
살라만다(Salamanda) – Ocean puts a fake spell on me

수평선이 내다보이는 모래사장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파도, 바다 소금 냄새, 곳곳에 놓인 돌과 해초류, 수영금지 경계선. 망망대해를 지나쳐본 적도 해수면 아래로 깊게 들어가 본 적도 없는 탓에 바다에 대한 상상은 몸으로 직접 갈 수 있는 경계면에서 멈춘다. 땅에 사는 동물들이 바닷속 세상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물과 뭍을 오갈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만이 공기 속의 음속과 물 속의 음속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도롱뇽, 살라만더(salamander)는 바로 그런 이들 중 하나다. 

(후략)

전문: http://munhak3.com/detail.php?number=1948&thread=21r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