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WeSA Festival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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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운드 아티스트입니다’(We are Sound Artists, 이하 위사)라고 선언하는 한 단체가 있다. 사운드 아트라는 말은 일견 직관적으로 ‘소리를 이용한 예술’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지만, 음악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묻는 순간 경계의 모호함이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음악이 곧 사운드 아트이고, 사운드 아트는 곧 음악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한편, 미술의 영역에서 소리를 이용한 작업들을 사운드 아트라고 명명하는 것은 특정한 제도 안에서 분명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어떤 제도적 경계 없이 스스로를 사운드 아트라고 부른다면, 그 작업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방식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라는 말보다는 사운드 아트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작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르별로 나뉜 오늘날의 음악계 중 제도적으로 그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는 작업, 또는 여러 장르를 가로지르는 작업, 혹은 소리와 영상, 텍스트 등 다른 매체를 대등하게 결합해서 근본적인 형식 및 존재 방식에서 기존의 음악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즉, ‘사운드’라는 재료 혹은 매체를 사용함은 확실하지만, 기존의 제도 바깥, 혹은 제도 중간에 있는 작업들이다. 위사는 사운드 아트라는 그 널찍한 개념을 기반으로 바로 그런 모호한 지대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작업을 한데 모으고, 나아가 그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는 단체다.

2014년에 태싯 그룹(Tacit Group)을 필두로 만들어진 위사는 매년 페스티벌을 개최해왔고, 2016년 12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숲 인근 신설 문화센터인 언더스탠드 애비뉴 내 ‘아트애비뉴’에서 그 세 번째 페스티벌을 열었다. 12월 2일의 세미나를 시작으로 3일-4일 양일간 총 열세 개의 작업이 소개되었다. 사운드 아트라는 큰 틀 안에서 여러 형식, 여러 매체들이 등장했지만 위사 페스티벌에서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오디오비주얼(audio-visual)이라는 형식이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작업들은 근본적으로 오디오에 기반을 두지만 모든 작업에 시각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고, 비주얼은 오디오에 대등하거나 혹은 오디오보다 더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시각적 요소들은 악보처럼 보이는 시각물, 피아노를 촬영한 영상, 무용, 퍼포먼스, 소리를 그대로 시각화한 듯한 비주얼, 사진 등으로 상당히 다양했으며 때로 작업의 주제는 오디오보다 비주얼에서 더 직접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위사 페스티벌의 작업들을 느슨하게나마 묶어준 또 다른 요소는 디지털 미디어였다. 대부분 작업의 근본적인 구성 재료는 디지털 미디어에 기반한 것이며, 주제 자체가 디지털 미디어의 본질적인 조건을 겨냥하는 작업도 있었다.

오디오, 비주얼, 그리고 디지털이 밀접하게 얽혀있는 작업들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사운드 아트라는 새로운 제도에,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동시대적 맥락에 더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악’과의 교집합은 존재한다. 가장 관습적인 것과 맞닿아있는 것들부터 살펴보자. 그 시작점은 악보와 악기다.

오디오비주얼로서의 악기와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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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스코르다토 <Vision II>(http://julianscordato.com)

줄리언 스코르다토(Julian Scordato)의 <Vision II>는 여러 도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미지가 한 지면으로써 제시되고, 붉은색의 얇은 선이 이 위를 떠다니며 그 지점의 그래픽에 상응하는 소리를 내는 작업이다. 마치 기보 프로그램에서 악보를 재생하는 것 같은 형식이다. 이 그래픽 이미지를 구성한 도형들이 음고나 음량 등 소리의 파라미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그래픽 기보방식으로 쓰인 악보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고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악보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이 작업에서 이미지는 기록된 어떤 것이 아니라 소리와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유동적인 시각물이다. 때로 도형 일부는 갑자기 사라지기도, 등장하기도 한다. 소리도 물론 이와 호응하며 변화하지만 소리가 사후적으로 이미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도, 그 반대도 아니다. 오디오와 비주얼은 그저 동시에 함께 움직인다. <Vision II>의 비주얼은 악보의 영역을 넘어서 사운드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감상의 대상’이 된다. 오디오비주얼이라는 큰 틀 안에서 악보라는 기존의 제도는 전유되고, 조금씩 비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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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시 미야마 <피아노 키메라> (http://chikashi.net)

치카시 미야마(Chikashi Miyama)의 <피아노 키메라(Piano Chimera)>는 카메라의 시선과 마이크의 귀로 피아노라는 ‘소리기계’의 내부를 탐험하는 작업이다. 타현에 의한 소리보다는 피아노라는 사물에서 들을 수 있는 갖가지 부수적인 소리와 우리가 쉽게 시선을 두는 건반보다는 들여다보기 어려운 피아노의 내부에 더 집중한다. 새로운 주법탐구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는 타현에 의한 소리를 ‘제외한’ 나머지로 음악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락헨만(Helmut Lachenmann)의 기악적 구체음악에서 구현되는 음향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리는 피아노의 기존 작동방식에 대한 ‘부정’도 아니며, 특수한 ‘효과’로 쓰이지도 않는다. 이 소리는 긴장과 이완을 형성하고, 리듬을 만들고, 음향적 움직임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명확한 소리재료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마이크와 스피커, 그리고 카메라와 스크린이다. 녹음과 재생 없이는 이 소리로 빠른 리듬을 만들어내거나 긴장과 이완의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귀보다 더 세밀한 마이크, 눈보다 더 자세한 시선으로 기록된 이 소리-이미지들은 편집을 거쳐 그 음량과 이미지 크기가 증폭되고, 빠르게 움직이고, 밀도 높은 구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마치 피아노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이를 조작하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망상’이라는 뜻의 ‘Chimera’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시청각적 사건이 오디오비주얼을 통해 구현됐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 디지털 일색의 이 페스티벌에서 여전히 피아노라는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이를 흑백으로 보여주는 점은 어딘가 향수적이기도 하다.

 

(후략)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10>, 예솔 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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