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말, 그리고 호흡

이런 종류의 사람이 있다. 명쾌하게 요점을 집어내면서도 당연하고도 간단히 말하는 사람. 그런가 하면 이런 종류의 사람도 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말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이미 했던 말을 집요하게 반복하면서 말을 멈췄다가도, 다시 계속해서 힘들고 어렵게 말을 이어가는 사람. 이를테면 모차르트는 전자, 브루크너는 후자다. 2016년 4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임헌정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브루크너 시리즈 7번째 무대는 아주 다른 두 작품, 모차르트(W. A. Mozart)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브루크너(A. Bruckner)의 <교향곡 2번>을 무대에 올렸다. 모차르트와 브루크너는 음악을 말하는 방식도, 호흡도 아주 다르지만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은 아주 섬세한 작품이다. 비통, 슬픔, 분노, 복수 등의 감정들이 그 결을 달리하며 음악 곳곳에 퍼져있고, 순식간에 분노는 슬픔으로 바뀌고, 슬픔은 자조적인 비통으로 바뀐다. 쉼없이 다양한 감정들을 쏟아내지만, 연주하기 까다롭게도 모차르트의 이 작품은 예리함과 명확함을 요구한다. 연주는 정교하고 묵직했다. 한 마디 직접적인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세심한 표현들만으로 마음이 무너져내리게 하는 듯한 연주였다. 손열음은 터져 나오는 감정을 내리누른 채 악보 이면에 숨은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기라도 한 듯 분명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쉼 없이 달려가면서도 이 작품에서만 찾을 수 있는 보석 같은 미사여구를 명확하게 연주했고, 황홀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전달했다. 앙코르로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역시 훌륭했다.

섬세하지만 명확한 모차르트와 달리, 브루크너의 <교향곡 2번>은 아주 의뭉스럽게 시작한다. 안갯속에서 선율들이 피어오르고, 이 음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는 음악을 한마디로 단언하지 않고, 아름다운 음악어휘들로 복잡하고 기나긴 산문을 써내려간다. 한슬릭이 평한 대로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거나 지루하다고 여기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브루크너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이해해보아야 한다. 이렇게 길게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말을 멈추었다가도 끝내 음악을 이어간 브루크너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면의 소리 아래로 한 층 더 깊이 들어가 그의 ‘호흡’과 함께해야 할지도 모른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브루크너의 장황한 말에 휘둘리지 않고 긴 시간 동안 끌고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임헌정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야말로 베테랑들의 연주였다. 끝없이 쏟아지는 브루크너의 음들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이 음악에 주석을 다는 듯했다. <교향곡 2번>은 주목을 많이 받지 않았던 곡이고 아름답지만 어렵다. 시리즈의 후반부인 지금은 적절한 시기였다.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더 파편적인 이 음악을 여유롭게 잘 끌고 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지난 3년간 쌓인 이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듯했다. 오랫동안 브루크너와 함께호흡해온 음악가들만이 들려줄 수 있었던 연주였다. 임헌정은 아름답지만 장황한 산문에 쉼표와 마침표를 찍어가며 프레이즈를 나누고, 행과 연을 구분해 각운을 가진 시로 만드는 듯했다.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에 깊이있는 해석이었다. 물론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예리했던 꼼꼼한 표현들이 다소 무뎌졌다는 아쉬움 또한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몰입도와 계속되는 힘있는 진행은 이를 만회할 만했다.

브루크너의 음악을 듣기 전에는 늘 주저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객석에 앉아 귀를 활짝 열고 듣다 보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브루크너는 아주 지루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다가도,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날카로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이 세계에 결코 없는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그걸 경험하는 순간은 정말로, 대체 불가능하다. 임헌정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특별히 새로운 브루크너는 아니다. 그러나 놓치기엔 아쉬울 정도로 굉장히 신뢰할만한 브루크너다. 3년째 브루크너 교향곡에 온 정신을 쏟은 사람들이다. 예술의전당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함께 기획한 브루크너 시리즈는 이제 두 번의 공연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가장 ‘브루크너적’일 때고, 앞으로 남은 두 공연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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