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F: 한문경 타악기 독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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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경 타악기 독주회
2017년 12월 3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Nicolaus A. Huber(1939-)

독일 아방가르드 음악을 이끈 인물 중 하나로, 음악에 대한 실험적, 비평적 태도를 꾸준히 견지해왔다. 후버는 특히 작은 제스쳐나 소음 등 음악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됐던 것들에 귀 기울였고 이를 적극적으로 음악화하는 과정에서 실험의 가능성을 찾았다. 초기에 그는 음렬음악의 엄격함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셀(cell) 단위에 기반한 작법을 발전시켰고, 차차 연극 분야와 협업 및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에서의 연극적인 효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베토벤, 슈만 등 이전 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비평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재정의하는 작품들도 남겼다. 리들(J. A. Riedl), 슈톡하우젠(K. Stockhausen), 노노(L. Nono)에게 배웠고 락헨만(H. Lachenmann), 슈팔링어(M. Spahlinger) 등과 긴밀하게 교류했다. 마르크스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Clash Music(1989)

한 쌍의 심벌즈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파열음은 주로 최고조에 달한 긴장감을 산산이 부숴내는 ‘효과적인’ 사운드로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후버의 <Clash Music>은 그 강렬한 효과를 걷어내고 심벌즈의 충돌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고유한 음향을 찾아낸다. 한 쌍의 심벌즈는 서로 정확히 맞물리고, 일부만 충돌하거나 서로를 긁고, 혹은 다른 대상과 부딪힌다. 그 울림은 연주자의 적극적인 제스쳐에 의해 증폭되다가도 연주자의 신체에 충돌하며 급작스럽게 중단되기도 한다. 이 작품이 단순히 악기 표면의 충돌뿐만 아니라 연주자 신체와의 부딪힘, 나아가 심벌즈의 관습적 쓰임새와 상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품 제목의 ‘Clash’는 ‘쨍하는 소리’라는 직접적인 묘사를 넘어 부딪힘과 충돌이라는 보다 폭넓은 의미로 다가온다.

John Psathas(1966-)

그리스계 뉴질랜드 작곡가 존 싸타스는 스스로를 “상아탑에 갇히지 않은” 작곡가로 규명한다. 창작의 출발점은 서양 고전음악이었지만 그는 여기서 유연하게 벗어나 여러 장르를 횡단하며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쌓아가고 있다. 싸타스는 서양 고전음악의 악기와 조성, 현대적 어법, 재즈의 즉흥성과 화성, 락 특유의 추동적인 에너지, 미니멀리즘의 반복적 텍스쳐 등을 자유롭게 연결한다. 싸타스의 음악은 독자적인 체계와 관습을 지닌 장르들이 그들만의 견고한 지대를 떠나 어떻게 ‘하나의 음악’으로 뒤섞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One Study One Summary(2005)

긴박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One Study One Summary>는 규칙적인 비트를 들려주는 음원과 마림바가 이에 맞춰 점진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과정’을 들려준다. 에튀드처럼 쉼 없이 반복적으로 음을 쌓아 올리며 긴장을 고조시켰다가 다시 서서히 사그라들며 변화를 예비하는 등, 같은 템포 위에서 어디가 클라이맥스고 어디가 끝인지 불분명한 변화들이 이어진다. 고정된 음원과 마림바 독주 혹은 마림바와 정크 퍼커션으로 연주하게 되어있는 이 곡은 정해진 리듬에 맞춰 독주자가 기보된 음들을 수행해나가고, 동시에 풍성한 합주적 사운드를 끌어낼 것을 요구한다.

Thierry de Mey(1956-)

티에리 드 메이의 작업은 영화와 현대무용, 음악이라는 큰 범주들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일관적인 주제를 보여준다. 감상자들이 일종의 게임에 참여하는 것처럼 작업의 완급을 잘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지속적인 시간을 작업의 전제로 삼고, 이를 토대로 ‘신체의 움직임’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매체로 탐구한다. 특별히 음악 분야에서 티에리 드 메이는 연주자의 움직임이 ‘음악 안의 음악’ 같다고 여기며, 신체의 움직임을 분명히 지각하고 다양한 제스쳐를 보여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벨기에 IAD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음악, 현대무용을 차례로 공부했으며 앙상블 ‘Maximalist!’를 창단했다.

Silence Must Be!(2002)

연주자는 맥박을 짚고, 그에 맞춰 박자를 지휘하는 것처럼 움직이다가 이내 곧 허공의 구석구석을 타격하고, 긁고, 쓸어낸다. 이 무음(無音)의 움직임들은 단순히 연주자의 신체와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전시하기보다는 소리나기 ‘이전의’ 움직임, 즉 음악을 만들어내는 연주자의 움직임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 움직임들에는 긴장과 이완의 리듬, 규칙적인 박절, 고저와 강약이 내재되어 있다.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움직임과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는 연주자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장 무뎌지지만, 소리가 다시 사라진 뒤에는 이 움직임들만으로도 어떤 잔향들을 상상하게 된다. ‘쉿’하는 제스쳐로 마무리되는 이 작품 <Silence Must Be!>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연주자의 신체와 움직임이 그 자체로 ‘음악적인 것’으로 각인된다.

Morton Feldman(1926-1987)

고요하게 부유하는 듯한 펠드만의 음악은 일견 오늘날 미니멀리즘과 유사하다고 여겨지지만, 그 음악이 놓인 개념적 토대나 시간을 구성하는 방식은 그 음향이 주는 인상과 달리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케이지(J. Cage), 울프(C. Wolff), 브라운(E. Brown)과 함께 뉴욕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어온 펠드만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확연한 진행감 없이 흘러가는 음, 비대칭적 리듬, 소리의 지속(duration)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역설적으로 성취하는 정지된 듯한 시간, 세밀하게 시시각각 음색의 결을 달리하는 엷은 음향 등을 구현했다. 특히 펠드만이 동료들과 함께한 그래픽 기보법에 대한 실험은 음악작품을 특정 음향에 귀속시키지 않고 유연하게 풀어놓았으며, 궁극적으로 ‘불확정적인 음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어졌다.

King of Denmark(1964)

악보에는 악기의 음색과 음고를 나타내는 기호들만 기보되어 있고, 정확히 어떤 악기를 선택해서 얼마나 높고 낮은 음을 어느 정도의 길이로 연주할지 결정하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또 이 작품은 말렛이나 스틱 없이 연주자의 손가락, 손바닥, 손등, 팔 등 연주자의 신체로만 연주하게 되어있다. 특정 악기의 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적합한 도구 없이 연주되어야 하는 만큼 선명하고 큰 소리를 내기가 어려운데, 펠드만이 추구한 것은 바로 이런 고요함이다. 그는 이 작품을 “세상의 모든 시끄러움에 보내는 고요한 저항(silent resistnace)”이라 불렀다. 2차대전 중 독일군에게 덴마크가 침공당했을 당시 덴마크의 왕은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낙인을 부과한 것처럼 자진해서 외투에 다비드의 별 표식을 새겨넣었다. 펠드만은 이를 ‘고요한 저항’이라 해석했고, 같은 맥락에서 이 작품의 제목을 <덴마크의 왕>으로 붙였다.

Ben Wahlund(1977-)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타악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주로 타악기 작품을 창작한다. 와런드의 작품은 개인적인 내밀한 인상에서 출발한 곡부터 책이나 영화 등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 자연에서 접한 소리와 그 정경을 표현한 곡 등, 작곡가 개인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경험들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특정한 패턴과 관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음악이 그런 일상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경험을 끌어낼 수 있길 바란다. 일리노이주 듀페이지 대학, 노스 센트럴 대학 등지에서 교육자로도 활동하며, 스튜디오 블랙 독 뮤직(Black Dog Music)을 운영하고 있다.

Hard Boiled Capitalism and the Day Mr. Friedman Realized Google is a Verb(2009)

<하드보일드 자본주의와 프리드먼이 구글이 동사라는 걸 깨달았던 날>이라는 제목의 비브라폰 독주곡은 작곡가 와런드가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와 밀튼 프리드먼의 책 『자본주의와 자유』를 읽던 무렵에 작곡되었다. 와런드는 ‘구글링(구글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지적재산권, 나아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궁금해하던 한편 대중들이 미국의 경기 침체를 알아차리기 이전부터 미국에서 이미 ‘하드보일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시대 미국인들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단면을 음악으로 들려주길 원했다.

Maki Ishii(1936-2003)

마키 이시이는 일본 현대무용의 문을 열었던 무용수 이시이 바쿠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현대예술은 물론 일본 전통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후 베를린으로 간 그는 블라허(Boris Blacher)와 공부하며 음렬주의를 비롯한 현대음악의 기법들과 당대 음악계의 최신 동향을 배웠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간 이시이는 일본음악의 구조적 틀에 현대음악의 기법들을 사용하거나 일본악기와 서양악기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등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음악들을 적절히 조합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찾았고, 이를 스스로 “제3의 이미지(third image)”라 불렀다.

Thirteen Drums(1985)

타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도전적인 질문을 마주한 이시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타악이 ‘다양한 악기와 주법으로 조성적인 음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보았다. 그는 그러한 통념에 벗어나는 타악기들로도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작품 <열세 개의 드럼>에서 음을 내는 데 적합하거나 잔향이 긴 악기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막명악기(막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만으로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크게 12개의 박으로 구성된 간단한 리듬과 13번째 박에 끼어드는 불확정적인 리듬으로 구성된다. 이시이는 이 작품에서 타악기를 연주한다는 것, 그리고 고정된 리듬과 불확정적인 리듬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발견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