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칼레이도스코프 나이트 스튜디오 공연 프로그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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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통영국제음악제 – 솔리스트 앙상블 칼레이도스코프

2018년 4월 3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Christoph Herndler: Abschreiben (2005)

한 작품의 악보에 상하로 오르내리는 선만 그어져 있다면 이 선은 음악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전사’ 혹은 ‘필경’이라는 뜻의 <Abschreiben>은 음악뿐 아니라 글, 사진, 비디오 등 여러 매체를 다뤄온 아티스트 크리스토프 헤른들러의 현악기를 위한 작품으로, 그래픽 기보로 쓰여 있다. 오선보 기보가 소리내야 할 음향을 최대한 정확히 기록하려 했던 것과 달리 그래픽 기보는 연주자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이미지가 주는 느낌을 소리화할 것을 요구하는 등 연주자의 해석에 상당한 자유를 부여했고, 청중이 듣게 될 소리는 연주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정사각형 안에 16개의 칸을 만들어놓고 칸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선을 그려놓은 헤른들러의 <Abschreiben> 또한 연주자의 선택에 많은 것을 맡긴다. 헤른들러는 악보의 선이 연주자가 내야 할 소리나 특정한 상징이 아니라, 활을 위아래로 긋는 ‘행동’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 단순한 선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악보는 현악기라는 악기편성과 연주자의 행동 방식만을 제시한다. 활을 상하 혹은 좌우로 움직이게 되어있는 현악기의 구조에 따라 이 곡의 조건은 소리의 리듬이 아닌 ‘행위의 리듬’을 발생시키며, 활을 긋는 행동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음악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Dmitri Shostakovich: Elegy: Adagio (movement 1 from String Quartett No. 15 in E-flat minor, Op. 144 (1974))

쇼스타코비치는 현악사중주에 내밀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때로 그는 교향곡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가 마주한 사회적 상황과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주제를 그려냈지만, 그 자신의 고유한 삶과 사적인 감정들은 현악사중주로 담아낸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총 15편의 현악사중주를 남겼고, 마지막 <현악사중주 15번>은 사망 1년 전에 완성했다. 엘레지, 세레나데, 인터메조, 녹턴, 장송 행진곡, 에필로그까지 총 여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전악장이 아다지오로 연주되고, 모두 아타카로 쉼 없이 이어진다. 1악장 엘레지는 자조적이면서도 스스로 성찰하는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며, 음악이 어떤 특정한 목표를 향해 발전되거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요하게 감정을 담담히 고백하듯 이어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죽음에 바치는 일종의 레퀴엠 같은 이 작품에 대해 “날다가 공중에서 떨어져 죽듯 연주하라. 그렇지 않으면 청중들은 완전히 지루해져 연주회장을 떠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Giacinto Scelsi: String Quartett No. 5 (1974/1985)

지아친토 셀시의 <현악사중주 5번>은 F라는 음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하나의 음을 중심으로 음악을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일견 상당히 폐쇄적이어 보이기도 하지만, 셀시의 음악은 이런 제한적 조건에서도 얼마나 다채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는지를 분명히 들려준다. 이탈리아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셀시는 오래된 고성에서 지내며 대부분의 교육을 개인 교습으로만 배웠고, 음악 또한 쇤베르크를 비롯한 몇몇 작곡가에게 개인적으로 배웠을 뿐 학교나 공동체에서 음악을 접하지 않았다. 셀시가 당대의 음악적 흐름과는 얼마간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음악적 욕망에 깊게 천착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한 음을 파고드는 셀시의 작법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폭넓게 나타나며, 종종 ‘단음 음악’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현악사중주 5번>에서 셀시는 F음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작품은 안정적인 F음으로 시작하지만 곧장 음정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점차 F음과 F음이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F음이라 부를 수 있는 범위가 서서히 넓어진다. 이 곡에는 총 43번 주기로 F음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이 F음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서 접하며 우리는 F음이 어떻게 주변과의 경계를 흐려가며 그 영역을 확장하는지, 또 네 대의 현악기가 F라는 한 음을 어떠한 방식으로 다르게 만들어내는지를 듣게 된다.

Isang Yun: Contemplation (1988) for two violas

두 대의 비올라를 위한 <Contemplation>은 윤이상이 스웨덴 중부의 스베그 지역에 머물렀던 1988년 여름에 작곡되었다. 이 곡은 북유럽 특유의 고요하고 청명한 자연에 많은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윤이상은 이 작품에 ‘호숫가의 고요함(Stille am See)’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서양의 독특한 긴장관계를 첨예하게 그려냈던 윤이상의 음악은 말년에 이르러 더욱 원숙하고 여유로운 면모를 보였다. <Contemplation>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정갈한 흐름을 들려주며, 곡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도 간결한 협화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이상은 두 대의 비올라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인물이 대화를 이어가기보다는 ‘사색’이라는 제목처럼 한 인물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스스로 자문하고 답하는 식의 느낌을 구현한다. 작품은 정적인 움직임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파도가 일렁이듯 움직임이 더 커지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고음부에서의 진행을 짧게 펼쳐낸 뒤 다시 잦아들어 앞의 조용한 분위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Francesco Guerrero-Marn: Zayin (1983) for String Trio

프란시스코 게레로 마린은 스페인의 작곡가로, 당대의 음악적 흐름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새로운 어법들을 폭넓게 받아들였고 특히 전자음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린은 그가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스페인 국립 그라나다 라디오에 전자음악 연구소를 설립하고 라스팔마스 폴리테크닉대학에 전자음악과를 개설하는 등 스페인 내 전자음악의 발전을 위해 힘썼으며 이외에도 공학자, 물리학자, 건축가 등과 많은 논의를 주고받으며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마린의 음악은 정교한 폴리포니와 복잡한 리듬으로 가득한데, 이는 연주나 청취뿐 아니라 작곡의 측면에서 상당히 도전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음향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구축해냈다. 나아가 그는 프랙탈 같은 자연현상의 기본적인 속성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Zayin>은 아르디티 현악사중주단의 위촉으로 만들어진 현악사중주 연작으로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간 작곡되었고, 총 일곱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Zayin’은 아랍어, 히브리어 등의 문자체계인 압자드(Abjad)의 일곱 번째 글자를 뜻한다. 1983년에 완성된 <Zayin>의 첫 번째 곡은 현악 특유의 예리한 음색이 돋보이는 곡이며 쉴 새 없이 긁어대는 날카로운 소리와 산산히 부서지는 듯한 파편화된 소리들을 들려준다.

Isang Yun: Together I/II (1989) for Violin and Double Bass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모습’이라는 뜻의 정중동(靜中動)은 윤이상 음악에서 나타나는 주된 아이디어 중 하나다. 윤이상 음악의 다양한 측면에서 발견되는 이 정중동은 때로 음양의 조화와 맞닿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움직임과 고요함, 부드러움과 강함, 높음과 낮음, 단순함과 복잡함 등 상대적인 것들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는 음양의 조화는 <Together I/II>에도 반영되어 있다. 먼저 이는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라는 두 악기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곡 전체에서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대조적인 음역뿐 아니라 각 악기의 음색이 빚어내는 명암의 대비가 두드러지며, 독자적인 선율을 연주하다가 유니슨으로 합쳐지는 등 두 악기의 합주방식에서도 음양의 조화가 나타난다. 또한 이 곡은 정적인 부분이 이어지다가 미묘하게 추동하는 힘에 의해 어느새 동적인 부분에 당도하고, 다시 정적인 부분으로 끝맺는 정중동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Together I/II>는 윤이상의 작품세계를 일면 드러내면서도 ‘함께’ 연주한다는 앙상블의 본질을 간명하게 풀어낸다. 이 곡은 그의 친구이자 악보 출판을 담당했던 쿤츠(Harald Kunz)에게 헌정되었다.

Michael von Biel: String Quartet No. 2 (1963)

미카엘 본 비엘은 독일의 작곡가, 첼리스트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다. 20세기 음악의 주요 현장들을 활발히 오갔던 비엘은 빈과 토론토를 거쳐 뉴욕에서는 펠드만(M. Feldman), 런던에서는 카듀(C. Cardew), 쾰른에서는 슈톡하우젠(K. Stockhausen)에게 음악을 배웠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음악세계를 일구어오던 작곡가들을 통해 비엘은 새로운 작곡법뿐 아니라 전자음악, 노이즈와 즉흥, 그리고 해프닝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그는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래픽 작업도 병행하게 된다. 비엘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많은 관심을 두었고, 우연성 음악이나 해프닝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작품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열린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현악사중주 2번>은 혁신적인 현악기 주법을 통해 신선한 음향을 선보인 작품으로, 이후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적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 instrumentale)과 같은 맥락에 있는 곡이라는 평을 받았다. <현악사중주 2번>은 우리가 사용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악기의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고,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작은 소음들에 주목하며 현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Philip Glass: String Quartet No. 1 (1966)

무한히 반복되는 리듬부터 노골적인 협화음, 멀티미디어와 결합한 음악,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오페라까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필립 글래스는 금기처럼 여겨졌던 요소들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유연하고 폭넓은 음악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나 <변신> 등 흥미로운 소재를 쓰거나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곡들이 크나큰 주목을 받아왔지만, 글래스는 11편의 교향곡, 10편 이상의 협주곡, 8편의 현악사중주 등 전통적인 형식으로도 많은 곡을 작곡해오고 있다. 그의 초기작 <현악사중주 1번>은 글래스가 음악적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였던 나디아 불랑제(N. Boulanger)와 라비 샹카르(R. Shankar)와의 만남 직후에 작곡된 곡이다. 이때는 글래스가 자신만의 분명한 음악어법을 구축하지 않았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서는 작은 모티브들이 반복되며 환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글래스는 모티브를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하지 않고 소리내는 방식을 세심하게 변주하며 반복의 지루함을 피한다. 이 곡은 오늘날 그의 미니멀리즘 기법의 초석이 된 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Peter Ablinger: Weiss/weisslich 17b (1995) violine and noise

프리 재즈에 깊게 매료되었던 그래픽 디자이너 페터 압링거는 하우벤슈톡-라마티(R. Haubenstock-Ramati)를 만난 뒤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을 반영하듯 압링거는 언어와 그래픽 기보를 사용해 연주자의 자유로운 해석과 즉흥성을 필요로 하는 곡을 작곡했고, 이외에도 매체와 관련된 노이즈나 시간과 공간, 소리라는 음악의 근본 조건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만들어왔다. <Weiss/weisslich>는 악기 혹은 사물의 가능성을 탐구한 프로젝트이며, 36개의 시리즈로 구성된다. 각 시리즈는 피아노, 녹음기, 의자 등 특정 악기 혹은 사물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이 중 17번째 시리즈의 테마는 ‘악기와 노이즈’이다. 17a부터 17q까지 총 17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17b는 바이올린과 노이즈를 위한 곡이다. 이 곡의 악보는 음악적인 기호 없이 오직 텍스트로만 다음의 지시사항들을 적어두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테이프에서 나오는 화이트 노이즈를 재생. 바이올린은 E음을 몰토 테누토로 연주하고 활 바꾸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할 것. 노이즈와 바이올린은 모두 메조포르테(mf)로 연주되며 노이즈가 배경음처럼 들리지 않도록 음량을 잘 조절할 것. 4분간 연주된다.” <Weiss/weisslich 17b>는 화이트 노이즈와 바이올린의 E음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폴리포니를 통해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Ludwig van Beethoven: Cavatina (movement 5 from String Quartet in B-flat Major, Op. 130 (1825))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의 5악장 카바티나는 베토벤 자신도 작곡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한 곡이다. 그는 이 곡에 ‘beklemmt(압박하다)’라는 나타냄말을 적어두었고, 이를 숨이 막힐 듯이 연주하라고 했다. 카바티나가 본래 ‘짧고 단순한 노래’라는 뜻임을 생각했을 때 이는 일견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깊은 아름다움을 가득 품은 이 악장을 듣다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베토벤의 심정에 동조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는 후기로 갈수록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양상을 띤다. 이는 급진적인 형식과 화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 카바티나 악장처럼 베토벤 자신의 내밀한 심경을 초연히 들려주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현악사중주 13번>은 총 6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래 이 곡이 초연됐을 때 6악장은 지금의 알레그로 피날레 악장이 아니라 오늘날 <대푸가 Op. 133>로 알려진 곡이었다. 베토벤은 초연 당시 푸가 악장이 너무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이를 새로 작곡한 알레그로-피날레 악장으로 바꿨다. 그러나 본래의 구성을 생각해보면, 카바티나 악장은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어질 혁신적인 대푸가에 앞선 서정적인 자기 고백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Ludwig van Beethoven: Große Fuge, Op. 133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베토벤 말년의 현악사중주 작품으로, 본래 <현악사중주 13번>의 6악장으로 쓰였던 곡이다. 베토벤은 이 곡에서 바로크 시대의 대푸가 양식을 고전 시대의 형식에 맞추려 노력했고, 동시에 푸가를 깊이 탐구하면서도 자유로운 음악을 만들려 했다. 이 곡에서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선율을 이끌어가며 대위적으로 엮인다는 푸가의 기본 아이디어는 충실히 구현되지만, 네 성부의 진행은 궁극적으로 잘 정돈된 하나의 텍스처로 수렴되기보다는 각자의 소리를 독자적으로 끝없이 쏟아내는 것에 가깝다. 치열한 논쟁의 현장처럼 다가오는 이 곡은 초연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해할 수 없다거나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평이 쏟아졌지만, 베토벤은 단 한 순간도 이 작품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약 15분가량의 짧은 곡임에도 수많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산재해있고 형식적으로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 곡은 그 자체로 많은 혁신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동시에 베토벤이 삶에서 겪어왔던 모순과 절망, 그리고 치열한 고뇌를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