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세계의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

어떠한 ‘세계’를 구축해내는 작품들이 있다. 바르톡(B. Bartok)은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 1939)에서 피아노 음악의 세계를 작지만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크럼(G. Crumb)은 <매크로코스모스>(Makrokosmos, 1973)에서 버르토크에 화답하는 동시에 신화적 세계를, 외트베시(P. Eötvös)는 빅뱅으로부터 시작하는 우주의 탄생과정을 차근히 그려낸다. 그리고 정태봉은 피아노 독주곡 <코스모스>(Kosmos, 1995)에서 우주를 상징하는 대우주(大宇宙)와 인간을 상징하는 소우주(小宇宙)에 관한 자신의 상념을 펼쳐낸다.

세계라는 큰 규모의 소재를 다루는 이 작품들은 모두 피아노곡이다. 일견 거대한 편성이 어울릴 것 같지만 그 어떤 편성도 세계라는 소재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들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는 대편성 작품을 피아노로 바꾸어 적듯 그들이 상상한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오케스트라나 다른 편성의 음악이 아닌, ‘세계’의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

제목에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포함한다는 것, 피아노 편성이라는 것이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지만 이들이 세계라고 여기는 대상은 서로 다르다. 바르톡은 피아노 음악의 세계, 크럼은 신화적 세계, 외트베시는 우주. 그런데 정태봉의 <코스모스>가 그리는 것이 어떤 세계인지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그 세계는 창작자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바로 창작자 자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한 작곡가의 세계라 부르는 것은 개별 작품과 작곡가의 발언 등 여러 사례로부터 추출되어 구성된 추상적인 정신일 것이다. 그런데 <코스모스>는 그의 세계가 작품의 소재가 된다. 작품들을 통해 작곡가의 세계가 사후적으로 조망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음악은 정태봉의 세계를 어떻게 담아내는 것일까. 함축적인가, 직접적인가, 그의 세계를 전부 드러내는가, 혹은 일부가 추출되었는가. 즉 그의 세계와 <코스모스>라는 작품의 접점, 그리고 그 층위는 어떠한가.

<코스모스>의 연주시간은 약 10분 내외로, 정태봉이 이 곡은 “대우주와 소우주에 관한 자신의 상념이 드러난 한 편의 음악적 시”라고 표현한 것처럼 압축적이고 비교적 짧은 길이이다. 작품의 진행 또한 거대한 서사를 다루듯 멀리서 세계를 조망하고 큰 외양을 설정한 후 디테일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세심한 시각으로 연필 끝과 종이가 만나는 오선보 위의 한 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연주자의 편의를 위해 그어놓은 점선 세로줄은 있지만 마디 선이 없다는 점도 이 곡이 특정한 리듬적 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순간 울리는 음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은 ‘가능한 빨리 연주할 것’(so schnell wie möglich)이라는 요구 하에 하나의 음이 울리자마자 다른 음들이 빠르게 뒤따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들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음정 간격을 밖으로 넓히고, 발산하는 하나의 음형이 구축됨과 동시에 <코스모스>라는 음악적 세계가 열린다. 1-2초간의 짧은 페르마타 후, 도약 없이 긴 음가로 이루어진 사뭇 다른 성격의 음형이 등장해 고요히 소리를 이어간다. 이 두 음형은 상반되는 특징들(빠름-느림, 동적-정적, 도약-지속)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두 음형의 성격이 더욱 짙어지는 만큼 그 접합지점에도 나름의 음악적 장치가 필요한데, 이 두 음형 사이에 그어진 점선 세로줄 위에는 특별히 페르마타가 붙어있어 연주자가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성질의 음형을 연주할 수 있게 되어있다.

전문: <한국을 노래하는 세계의 작곡가: 작곡가 정태봉 음악연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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