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듣고 쓰기: 《정악, 깊이 듣기》

header.jpg

 

정악은 누구에게 음악을 들려주는가

 

무정한 표정, 아래로 향하는 시선, 최소화된 몸짓. 시각적 몰입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큼지막한 스크린에 포착되는 정악단의 모습은 시종일관 분명했다. 한 연주자의 얼굴이 화면에 잡혀도 잠시 동공이 흔들릴 뿐, 그 단단한 표정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본령〉에서 〈보허자〉로, 〈수제천〉으로, 〈자진한잎〉으로, 〈수룡음〉으로, 〈영산회상〉으로 이어지는 그 긴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목격할 수 있던 것 중 하나는 연주자가 자신의 신체를 다루는 태도였다.

추측컨대 정악에는 ‘보여지는 것’에 대한 어떤 규범들이 있는 듯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표정을 짓지 않는다. 객석을 쳐다보지 않는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자신의 연주에 마냥 도취하지 않는다. 매무새를 정돈하고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소리를 위한 규범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지배층이 대다수였을 청자와의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규범에 가까워 보였다. 소리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몸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오랜 시간 훈련을 거쳐야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부단한 노력을 거쳐 만들어졌을 그 절제된 움직임들은 음악과 매끄럽게 호응하기도 했으나 때로 소리나 음악과는 무관해보였고, 몸의 반응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날 연주된 모든 음악이 궁중음악은 아니었고 정악단 또한 자신들이 다루는 음악을 “궁중음악, 제례악, 연례악, 군례악과 선비 풍류의 전통음악”으로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의 미동 없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는 왕과 사대부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공연 팜플렛의 「모시는 글」에서 “그동안 정악을 일반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여” 공연을 이러저러하게 꾸렸다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정악, 깊이 듣기》가 모시려 한 분들은 정악을 가까이에서 접하지 못했던 일반 사람들일 테다. 바로 그 일반 사람들의 입장으로 공연장을 찾은 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왕에게 ‘보여지는’ 것 같은 정악단을 바라보며 이 무대를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현실의 내 입장에서 들을지, 아니면 ‘정악의 청자’로 상정된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내려다보았을 옛 청자들에게 상상적으로나마 감정이입을 해봐야 할지 어쩐지 고민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 정악의 모습이 그들이 고수하고자 하는 소위 ‘전통의 원형’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그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정악이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혹시 옛 청자와의 특별한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정악은 지금의 눈과 귀로 정악을 살펴 듣는 관객들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될까? 그렇다면 미래의 정악은 어떤 모습일까?

 

전문: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웹사이트
http://heterophony.kr/2019/05/17/listenwritetogether-jeong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