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 인터뷰: 미술, 인식의 연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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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전시 <타이틀 매치: 이형구 vs. 오민>전에서 새로 선보인 <연습곡 1번>과 <연습곡의 연습곡>, <연습무의 연습무>, 그리고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될 연작 <연습연 ABCD>는 모두 ‘연습곡’이라는 소재를 공유합니다. 연습곡은 스포츠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신체적인 음악인데요. 이 소재를 택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OH 줄리아 울프(Julia Wolfe)의 음악 <Lick>이 그 출발점입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방향성만 느껴지는 중간 상태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통 음악의 첫 부분에서 (멜로디나 리듬, 혹은 음정 등으로 구체화되는) 주제가 제시되는데, <Lick>에서는 주제는커녕, 시작도 끝도 없는 연결구만 계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연결구’는, 지난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온 운동성과 관계 구조를 환기시켰습니다. 한편, 피아니스트 이영우에게 12인의 작곡가가 12인의 피아니스트와 협업해서 12개의 연습곡을 작곡한 프로젝트 ‘에튀드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금 연습 속 운동성과 방향성을 떠올렸어요. 처음엔 연습곡이라는 소재를 <Lick>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처럼 생각했지만, 연습곡의 근본인 ‘기술’과 ‘연습’에 대한 궁금증이 확대되면서, 결국 별도의 주제로 분리해 냈습니다.

 

수행과 ‘연습곡’

SHIN 이번 연습곡 작업에서는 ‘수행’이 이전보다 더욱 전면에 드러난 듯합니다. 저는 서양 고전음악은 작곡가-연주자-청중이라는 세 인물, 혹은 작품-수행-청취라는 삼각구도를 전제한다고 봅니다. 소나타 소재의 <ABA>(2016)에서는 작품 구조를 바깥으로 꺼내 사물의 움직임으로 조형했다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수행에 집중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OH 오히려 시작점은 ‘구조’가 아니라 ‘수행’이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공연에서 발견되는 특유의 신체 현상에 집중하여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2014)를, 반대로, 풍성한 표현에 직결되는 음악의 제스처도 계획과 이성의 산물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2015)를 만들었어요. 이때 연주 연습을 음악 분석, 근육의 계획, 반복의 세 단계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않는 음악 구조의 분석 단계에 집중해본 것이 <ABA>입니다. 피아노 연주가 모국어와 다름없는 저에게, 영상의 시간 구조에 음악의 형식을 접목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종종 론도, 모음곡 등 음악 형식을 영상의 큰 구조를 짜는데 이용해 왔습니다. <ABA>는 보다 본격적으로 소나타 구조를 분석하여 영상의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마치 음악을 조직하듯 정교하게 적용하는 시도였습니다. <ABA>연작 이후 음악 문헌의 구조 연구를 일단락 짓고, <관객>과 <공연자>(2017)를 만들면서 시간 뿐 아니라 공간, 역할, 인과의 구조를 짜는 방향으로 실험을 확장했는데, 이때 수행이 자연스럽게 다시 소환되었습니다. 수행을 표면에 남기고, 더 정교해진 구조가 그 이면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죠.

SHIN 보통 연습곡은 한 요소를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음악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작곡가 유혜림과 함께 만든 음악 <연습곡 1번>에는 그러한 반복도 없고, 2부와 관계된 영상 <연습곡의 연습곡>에서 연습은 신체보다는 내적 훈련, 혹은 연주자들의 머릿속에 벌어지는 사건에 가까워 보입니다. 무엇을 위한 훈련이었나요?

OH 연습곡에서 두 가지 주제를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과정과 최종이 공존하는 상태, 둘째는 기술의 범위입니다. 특히 기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대개 연습이 신체적인 일이라고 여기지만 쇼팽 연습곡 Op. 10 No. 3이나 Op. 25 No. 7은 신체 훈련보다는 음악적 표현을 강조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저는 쇼팽이 이 연습곡을 통해 기술의 범위에 대해서 이미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표현도 연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사유한 대로 수행하는 것이 기술이고, 그 사유와 기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표현이며, 그것이 반복돼서 몸에 익으면 태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주자의 태도나 인식은 이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기술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인식의 기술은 무용가들과의 협업과정에서 추출한 개념인데, <연습곡 1번>은 이를 음악 연주자들에게도 제시할 수 있을지 시도한 것이고, <연습연(練習演) ABCD>는 공연자들이 인식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실험한 것입니다. 쇼팽이 표현 기술의 연습을 제안했다면 저는 인식 기술의 연습을 제안하는 셈입니다.

SHIN 인식을 연습하게 된다면 그 훈련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머릿속이겠군요.

OH 연습곡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세 번째 주제는 공간입니다. <연습무의 연습무>는 물리적 공간, <연습곡의 연습곡>은 시간의 공간, <연습연 ABCD>은 생각의 공간에 집중합니다. <연습곡의 연습곡>은 작곡가가 짜놓은 음악의 시간을 공간이라 가정할 때 연주자가 음악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할수록 그 시간의 공간이 확장되는 데서 착안했습니다.

SHIN 사실 <연습곡의 연습곡>을 보고 ‘공간’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전 작업에서 공간은 실제 시공간과 전혀 무관한 곳이자 음악적인 논리가 작동하기 좋은, ‘통제 가능한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연습곡의 연습곡>에서는 그런 차원의 공간조차 읽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의 공간’이라고 말씀하시니 이해가 됩니다.

OH 어떻게 보면 이전 작업에서 보이는 공간은 모두 머릿속의 공간을 구성한 것입니다. 두뇌가 이미지를 편집하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한편 영상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통제 가능한 효율적인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은 통제하기 힘들어 기피했지만 또 안 가본 곳이기 때문에 늘 가보고 싶었죠. <연습무의 연습무>에서는 과감하게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습니다. 연습곡 시리즈가 저에게도 전방위적인 연습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연습연 ABCD>에서도 자연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SHIN 통제라는 측면에서 이번 <연습곡 1번>의 과정과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작곡가에게 ‘작곡’이라는 수행을 시키고, 여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행의 결과물을 악보, 공연, 녹음, 그리고 <연습곡 1번>의 2부를 연습하는 영상 <연습곡의 연습곡> 등 다양한 매체로 만드셨죠.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꼼꼼히 디자인되고 조정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공연’은 통제가 몹시 어려운 형식입니다.

OH <연습곡의 연습곡>에서 모든 연습과정을 통제한 것은 아닙니다. 연주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던 부분, 혹은 연주자들이 입으로 연습할 때 더 흥미롭다고 얘기한 부분을 선택, 반복하는 등 연습의 근거와 반응을 기반으로 구조를 짰어요. 다양한 매체로 결과물을 만든 것은 악보, 음원, 공연이라는 세 가지의 원본 형태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후략)

 

전문: 『아트인컬처』2018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