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F: Re-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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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F앙상블 Re-Creation 재창조: 신선하게 더럽혀진 음악

2017년 3월 9일 7시 30분 한남동 일신홀

음악은 언제나 이전의 역사를 딛고 나아간다. 오랜 창작의 역사 속에는 과거의 유산을 의도적으로 등진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좇았던 이가 있었고 적극적으로 역사와 대면한 이도 있었다. 중에서도 과거에 화답한 작곡가의 음악은 온전히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과연 본질적으로 역사와 기원이 완전히 부재한 음악이 존재할 있을까. 그리고 혹자의 말처럼 어쩌면 새로움이라는 가치가 가장 낡은 것은 아닐까.

다른 이의 음악, 혹은 떠도는 선율을 작품화하는 것은 오랜 시간 여러 문화권에서 쓰인 창작의 주요한 방법의 하나였다. 오늘날 인용, 차용, 샘플링, 포스트프로덕션 장르와 매체에 따라 각각의 이름으로 불리는 창작방법은 본질적으로 재창조 여러 갈래로 이해된다. 이러한 작법을 이용하는 여러 장르 중에서도 20세기 후반 현대음악에서 등장한 인용음악은 현대음악이 추구해왔던 새로움 정신에 대한 반발처럼 다가오고, 정전(canon)으로 여겨진 작품에 대한 찬사 혹은 오마주를 넘어 이를 변형 가능한 재료로 다루며 유희적으로 재창조하며, 인용된 작품과 자신의 음악을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긴장을 만들어낸다. , 과거와의 의식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확고한 현대성을 획득한다.

바흐의 음악과 자신의 음악을 작품 안에 병치하고, 브람스의 작품에 일종의 필터를 장치하여 새로운 음악으로 재해석하고, 오스티나토 위에 베토벤의 단편들을 흐릿하게 출몰시키며, 나아가 펑크(funk) 록의 언어를 작품화하는 이들은 과거 혹은 다른 장르 음악에 음악으로써 화답한다. 현재와 과거, 자신과 타인이라는 사이의 긴장을 분명히 보여주는 작품들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음악이 현대성과 고유성을 어떻게 성취할 있는지를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선언한다.

George Rochberg (1918-2005)

청년 시절 음렬주의에 깊게 빠져있었던 록버그는 1964년 아들의 죽음 이후 급작스럽게 음악적 방향을 바꾼다. 현대의 음악어법이 지닌 표현의 한계를 마주한 그는 조성을 다시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 주요한 방법으로 기존 작품을인용했다. 그의 작품에는 베토벤, 말러, 슈톡하우젠 등 여러 작곡가의 작품과, 재즈를 비롯한 대중음악, 나아가 자신의 음악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직접 인용되었다. 록버그가 일궈온 음악세계와 인용작은 한 곡 안에서 공존하며 이를 통해 음렬과 조성, 타인과 자신의 음악, 구체와 추상 등 상반되는 요소들의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Nach Bach (1966)

건반악기를 위한 판타지로, 바흐의 <파르티타 6>이 인용되었다. 바흐의 작품이 원형 그대로 등장하는 부분 외에도 바로크 특유의 음악어법을 떠올리게 하는 극적인 분위기 전환, 기교적인 스케일 등이 곡 전반에서 나타난다.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풍의 음악과 록버그의 음악은 비교적 분명히 구분된다. 작품은 록버그가 창작한 음렬로 시작하지만 이내 음악을 순식간에 바흐의 시대로 바꾸어놓는 것처럼 짧은 시간 안에 바흐의 어법으로 전환되고, 다시 록버그의 어법으로 돌아간다. 동등한 층위에서 바흐와 록버그의 음악을 오가는 이 작품은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듣는 듯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David Rakowski (1958-)

미국의 작곡가 라코브스키는 어린 시절 관악 밴드에서 트롬본 연주자, 록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프린스턴, 탱글우드, 스탠퍼드 대학에서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피아노 에튀드 시리즈로, 그는 에튀드 형식 안에서 테크닉, 개념, 구성의 문제를 다루고 더 나아가 양식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Piano Etude No.14 ‘Martler’ (1997)

영국의 하드 록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대표 곡 중 하나인 ‘Smoke on the Water’를 피아노 에튀드로 변용한 작품이다. 원곡의 뚜렷한 텍스처와 멜로디는 작품의 내적 구조로 치환되며, 간헐적으로 최상 성부에서 원곡의 주 멜로디가 나타난다. 직관적으로 거칠게 추동하던 딥 퍼플의 음악은 라코브스키에 의해 비르투오시티를 요구하는 정교한 작품으로 변형된다.

 

John Corigliano (1938-)

미국의 작곡가 코릴리아노는 클래식 전통과 현대음악에 정통한 교육을 받고 성장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와 음악이 혼종되어 있는 뉴욕에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다채롭게 접해왔다. 그러한 결과 코랄부터 베르크의 음악, 블루스, 랙타임(ragtime) 등 각기 다른 기원을 가진 여러 음악적 요소들이 그의 음악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작품에 직접 인용되기도 했다. 각 음악의 개별적 특성은 모두 다르지만 코릴리아노는 이를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엮어냈고 이러한 그의 음악은전통과 혁신의 완벽한 조화라는 평을 받았다.

Fantasia on an Ostinato (1985)

코릴리아노가 미니멀리즘의 기법을 처음 시도한 작품으로, 하나의 음으로 지탱되는 오스티나토 위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7 2악장의 단편들이 환상처럼 흐릿하게 지나간다. 베토벤의 작품에서 끈질기게 반복되는 음형은 이 작품에서 리듬과 화성으로 분리되어 각기 반복 및 변형된다. 이 곡에서 오스티나토는 미니멀리즘 기법의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베토벤의 작품과 일종의 시차를 보여주는, 즉 동시대라는 한 지점을 음악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듯하다.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곡의 끝부분에서는 베토벤의 테마가 원형에 가깝게 재현된다.

 

Gérard Pesson (1958-)

프랑스 작곡가 제라르 페송은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과 음악학을, 파리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으며 현재 파리음악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졸업 후 동시대 음악 저널 ‘Entretemps’를 창간했고 라디오 프랑스의 프로듀서로도 재직했다. 창작 활동에서는 특히 무대 음악에 많은 관심을 두며 안무가 다니엘 도벨스(Daniel Dobbels)와 함께 여러 차례 협업했다. 그의 음악은 유럽에 기반을 둔 여러 음악 단체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Nebenstück (1998)

오랜 시간 페송의 뇌리에 맴돌았던 브람스의 발라드 Op.10 No.4 를 클라리넷과 현악사중주 편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발라드를 반복해서 듣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도록 내버려두고 그 잔해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만든 이 작품은 브람스의 작품과 페송 자신의 기억에 대한 향수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듯하다. 페송의 음악에서 브람스의 발라드를 이뤘던 뱃노래(barcarolle)의 리듬과 느리고 묵직하게 움직이는 선율은 여러 악기로 나뉘어 흐릿한 음색으로, 뚜렷했던 화성은 옅은 뉘앙스로 변형된다.

 

Johannes Schöllhorn (1962-)

요하네스 쇨호른은 실내악, 성악, 교향곡,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독일의 작곡가로, 음악 창작뿐 아니라 음악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깊게 사유하는 인물이다. 쇨호른의 작업을 이루는 큰 축 중 하나는 기존 작품에 대한 편곡 및 재해석이다. 그는 불레즈의 <…폭발하는고정된(explosante-fixe)…>을 비롯하여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마드리갈 양식, ‘In Nomine’ 등 여러 음악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창조하였다

In Nomine (1994)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널리 재생산되는 정선율 ‘In Nomine’가 비올라 파트에서 원형 그대로 연주되는 작품이다. 특별한 리듬적 장치나 변형은 없지만 비올라의 너트(Nut, 독일어: Sattel)에 손을 짚고 연주할 것을 지시해 음색 변화를 만들어냈고, 바이올린과 첼로 성부에서 피치카토로 동적인 음형을 연주해 생동감을 더했다. 1999년에 Ensemble Recherche가 기획한 ‘In Nomine’ 프로젝트의 참여 작품이 되기도 했다.

 

Georg Friedrich Haas (1953-)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의 음악은 마이크로폴리포니, 미분음, 스펙트럴 뮤직 등, 음을 아주 섬세하게 다루는 기법적인 측면에서 많이 회자되지만, 한편으로 그는 소리의 내적인 긴장으로부터 비롯되는 특유의 감정적 효과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는 작곡가이다. 세밀하게 계획되는 그의 작법과는 일견 멀어 보이나 하스가 일찍이 관심을 두었던 작업의 주제는’, ‘어두움’, ‘밤의 세계등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이었다. 최근 하스는 대조적으로에 관한 주제들도 조금씩 다루는 등 작업의 주제를 넓혀나가며 꾸준히 음악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In Nomine (2001)

쇨호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정선율 ‘In Nomine’를 바탕으로 작곡한 작품이며, 앙상블을 이루는 모든 악기가 각자의 순서에 따라 정선율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부는 세밀하게 어긋나며 중첩되지만, 점점 음가와 선율에 변화가 생기며 악기들이 정선율의 일부를 나누어 연주하게 된다. 어딘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음들을 느리게 잡아 끌며 소리의 울림에 집중하게 하는 이 곡은 정적이고 영적인 감각을 경험하도록 한다.

 

David Lang (1957-)

데이빗 랭은 클래식 음악에 정통하면서도 기존의 제도에 갇혀 있지 않는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미국의 작곡가이다. 랭은 오케스트라, 실내악, 솔로, 합창, 오페라 등 기본적으로 클래식의 관습적인 편성 및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작품의 주제와 내적인 구조 면에서는 동시대의 청중에게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가려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이 불길하고 불안정한 정서부터 최면에 걸리는 듯한 감각, 또는 천상의 소리와 같은 느낌 등 다양한 성격을 지닌다고 표현한다. 음악 단체 뱅온어캔(Bang on a can)의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 예술감독이다.

Cheating, Lying, Stealing (1993, rev. 1995)

랭은 어느 순간 작곡가들이 창작할 때 자신이 얼마나 예민하고, 고상하고, 감정적이고, 뛰어난지를 자랑하기 위해 작품을 쓰는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반대로 자신이 엉망진창이고, 거짓말쟁이이며, 불명예스럽다는 것을 코믹한 방식으로 보여주기로 했고, 이를 음악적으로는불길한 펑크(funk)”로 구현했다. 소울, R&B, 재즈에 영향을 받아 생겨났으며 특유의 그루브를 지닌 펑크의 고유한 특징과 구성 요소는 이 작품에서 산산이 흩어지고, 어둡고 무거운 색채의 음악으로 변모한다.

 

Salvatore Sciarrino (1947-)

살바토레 샤리노는 어린 시절부터 공식적인 교육 없이 독립적으로 음악을 탐구하다가 62년에 첫 공연을 열었고 자신의 음악관을 본격적으로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창작의 방향을 고민했던 만큼, 정식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빠르게 음악세계를 확장할 수 있었다. 샤리노의 음악은 낯선 주법과 음향, 빈번히 나타나는 정적, 뚜렷한 서사구조 등의 특징을 보이며, 미국 대중음악과 현대음악의 이질적인 조합, 과거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 등 인용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Le voci sottovetro (1998)

제수알도의 작품 중베노사의 왕자의 가야르드(Gagliarda del Principe di Venosa)”, “당신은 날 죽이고 있네, 오 잔인한 사람(Tu m’uccidi, o crudele)”, “왕자의 프랑스풍 칸초네(Canzon francese del Principe)”, “나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네(Moro, Lasso al mio duolo)” 네 곡을 인용한 작품이다. 기존 음악에 관한 재해석, 변용 등 뚜렷한 변화를 끌어내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샤리노의 이 작품은 제수알도의 음악을 현대의 음악언어로 세밀하게 옮기며 현대적 색채를 덧입힌 것에 가까워 보인다. 기보된 음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부분부분 첨가된 현대적인 음향과, 원곡보다 훨씬 입체적이 된 앙상블의 음향에서 샤리노만의 고유한 감각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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