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F: Re-Creation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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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reation

‘새로움’이란 무엇일까? 새롭고 신선한 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칠 줄 모르는 레트로(Retro) 열풍이 문화 전반에 끝없이 퍼져가고 있다. 급기야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과거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이 최근의 유행은 과거에 대한 애호나 동경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런데 새롭지 않은 것에 열광하는 흐름은 비단 레트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낡고 버려진 것들을 재활용해 가치 있는 상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도 뜨겁고,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옛것과 관계를 맺는 시대가 됐다. 지나간 것, 버려진 것에 대한 관심이 세간의 화두에 오른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혹시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새로움에 대한 피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현대음악과 ‘새로움’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매년 3월에 열리는 사운드 온 디 엣지(Sound on the Edge)의 《Re-Creation》 시리즈는 ‘현대음악은 새롭다’는 유서 깊은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돌이켜보면 이 음악계의 작곡가들은 오랜 시간 유럽 전통의 음악과 그 역사를 배워왔고, 그로부터 여전히 창작의 동기를 얻고, 계속해서 같은 악기로 유사한 형식의 작품을 비슷한 형태의 공연장에서 연주해왔다. 이 유구한 전통은 여전히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음악 역시 그 전통의 손을 결코 놓지 않았다. 즉 우리가 마냥 새로울 것이라 믿어왔던 이 음악에는 언제 어디서부터 계속됐는지 모를 과거의 것들이 언제나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Re-Creation》이 소개하는 작품들은 바로 이 현실을 직시하고, 역사와 전통을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작품들이다.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빈 고전주의에 짧은 추신을 붙이는 듯한 실베스트로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Post Scriptum>,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작곡가 쿠프랭의 음악을 파고드는 듯한 골리호프의 현악 사중주 <Tenebrae>,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등 여러 지역을 떠돌던 민요를 새로운 색채로 그려낸 베리오의 <Folk Songs>, 그리고 바흐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힌데미트의 작품을 또다시 재창조한 안성민의 신작 <Ragtime>까지, 네 작품은 현재의 시선으로 이전의 음악들을 재창조한다.

 

실베스트로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Post Scriptum>

한 음악에 앞서 연주되는 것이 전주곡(Prelude)이고 두 음악의 중간에 연주되는 것이 간주곡(Interlude)이라면, 한 음악이 끝난 뒤에 연주되는 곡은 후주곡(Postlude)이다. 수많은 전주곡과 간주곡이 존재하는 데 비해 후주곡이 그만큼 많지 않은 것은 이미 끝난 음악에 대해 더 이상 무언가를 부연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Valentin Silvestrov, 1937-)가 작곡한 <Post Scriptum>(1994)은 그가 여러 차례 작업해온 후주곡 작품들 중 하나다. 실베스트로프는 화려하게 꽃피우고 그 막을 내렸던 고전주의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회고하며 그 지나간 음악에 자신의 주석을 덧붙인다. 이 질서정연한 음악에 불시에 파고드는 의외의 소리들은 실베스트로프가 이미 일찍이 종결되어버린 이 시대의 음악을 들으며 품었던 뒤늦은 의문, 생각, 경탄, 실망, 노스탤지어 등 여러 심정을 드러내는 듯하다.

 

안성민의 <Ragtime-The Elegant Pierrot>

서양 고전음악의 구약성서라고도 불리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결코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1921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다단조 푸가는 힌데미트에 의해 시끌시끌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라 곡으로 재탄생한다. 엄격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축제의 한 장면처럼 탈바꿈한 이 곡에는 절뚝거리는 리듬이 특징적인 음악 스타일을 뜻하는 ‘랙타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바흐로부터 출발했지만 상당히 먼 곳에 도착한 힌데미트의 <랙타임(평균율)>을 들은 작곡가 안성민은 여기서 또다시 재창조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성역화되어 있는 바흐의 질서정연한 음악, 재즈의 전신이기도 한 경쾌한 랙타임, 이 둘을 재치있게 연결해 화려한 오케스트라 곡으로 풀어낸 힌데미트의 음악까지, 안성민은 서로 다른 이 기존의 음악들을 뒤섞고 재구성해 시보드와 타악기, 피아노를 위한 신작을 작곡했다. 안성민은 시보드의 나긋나긋한 움직임과 반복적인 리듬으로부터 ‘우아하게 걷는 광대’를 떠올렸고, 이 곡에 <랙타임-우아한 피에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골리호프의 현악 사중주 <Tenebrae>

2000년 9월, 이스라엘에 머물던 아르헨티나 작곡가 오스발도 골리호프(Osvaldo Golijov, 1960-)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폭력 사태가 시작되던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일주일 뒤, 그는 뉴욕에서 아들과 함께 새로 생긴 천체 투영관(planetarium)에 가서 우주의 한자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이념이 충돌하며 유혈사태를 만들어내던 이스라엘에서의 경험과 그 모든 갈등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채 푸르기만 한 지구의 모습을 바라보던 경험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골리호프는 시점에 따라 삶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잔인해 보이기도 한 것처럼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고통이 가득 차 있는 음악을 만들려 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허공을 떠도는 듯한 이 작품 <Tenebrae>(2003)는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작곡가 쿠프랭의 작품 <Troisieme Leçon de Tenebrae>의 일부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그 사이사이에 자신의 음악을 채워나간다. 테니브리(Tenebrae)라는 말은 어둠이라는 뜻으로, 가톨릭에서 부활절 직전의 3일간을 지칭한다. 골리호프는 작곡을 마친 뒤에야 이 작품이 히브리어로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를 반복해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밝혔다.

 

베리오의 <Folk Songs>

열한 곡으로 이루어진 <Folk Songs>는 미국, 아르메니아, 프랑스,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아제르바이젠 등 여러 지역에서 온 민요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2003)는 제각각의 기원을 지닌 이 민요들을 여러 나라 출신의 동료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인류학 문헌과 고음반 등 여러 자료를 통해 접했고, 이 노래를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며 새로운 리듬과 화성을 덧붙였다. <Folk Songs>에서 기악파트는 때로는 성악과 매끄럽게 뒤섞이며 더 풍성한 효과를 내지만, 때로는 그 노래를 바라보는 베리오의 시선을 드러내며 ‘노래에 대한 코멘트’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언젠가 베리오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민요를 재작업할 때 언제나 발견의 기쁨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