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O2021 – The Orient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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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2021 Column

The Orient Express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어떤 시간을 겨냥한다. 이 말이 특정한 공간이나 양식에 귀속되지 않고 ‘오늘날이라는 시점’ 혹은 ‘현대적 성질’을 찾는 탓에, 현대음악가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그들이 당면한 현대성을 고민해왔다. 물론 꽤 분명한 지리적 구심점이랄 것도 있었다. 이 음악이 서양음악의 역사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대체로 현대음악은 서양음악이 통용되는 시공간에 위치했다.

한편 오리엔트라는 말은 서양이 아닌, 타자화된 동쪽 어딘가를 지칭한다. 서양인에게 동쪽으로 끝없이 뻗어있는 드넓은 땅은 색다른 문화가 있는 낯선 타지였고, 동방에 대한 막연한 환상들이 존재했다. 즉 오리엔트는 단순히 동쪽이라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리엔트라 불릴 수 있는 영역으로 서서히 이동하다보면 어느 순간 환상 속에서 시간이 어그러지고, 이 타자화된 상상적 공간에서만큼은 전통의 이미지가 영원처럼 유지된다.

현대음악과 오리엔트라는 두 단어 사이에는 시공간의 뚜렷한 격차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세계지도를 그려본다고 했을 때, 거기서 현대음악의 시간과 공간이 끝나는 지대는 어디고 오리엔트의 공간과 시간이 시작하는 그 지대는 어디인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 개념들은 서로 충돌하지만, 실은 그 개념들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수많은 실례와 그 점진적인 변화는 어디에 있는가?

이번 STUDIO2021의 2017 가을시즌 공연 ‘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목적지는 바로 그 현대음악과 오리엔트의 접경지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배경이 되기도 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본래 파리에서 출발해 헝가리, 불가리아, 세르비아, 터키까지 이어지는 호화 열차 노선으로, 때에 따라 노선을 유연하게 확장·축소해나갔던 급행열차였다. 이번 공연 ‘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그 열차가 그러했던 것처럼 동과 서의 접경지대들에 정차하며, 두 공간 사이의 시차를 빠른 속도로 횡단한다.

프로그램은 한국의 작곡가 이신우의 <풍경>(Landscape, 2015)으로 시작해 이스라엘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길레드 미쇼리(Gilead Mishory)의 현악 사중주를 위한 <시편>(Psalm, 2005) 중 2악장 ‘시편’, 아르메니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아르노 바바드자니안(Arno Babadjanian)의 <피아노 트리오>(Piano Trio in f# minor, 1952), 이스라엘 작곡가 폴 벤 하임(Paul Ben-Haim)의 <피아노 소품집>(Piano Pieces Op.34, 1943) 중 ‘칸조네타’와 ‘토카타’, 시리아 태생의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작곡가인 키난 아즈메(Kinan Azmeh)의 <이븐 아라비 후주곡>(Ibn Arabi Postlude, 2007)를 지나 터키의 작곡가 율비 세말 에르킨(Ulvi Cemal Erkin)의 <피아노 퀸텟>(Piano Quintet, 1946)으로 향한다.

낯선 이름과 친숙한 제목이 교차하는 이번 공연은 오리엔트라는 공간 위에서 펼쳐진 현대음악들, 혹은 현대라는 시간이 포괄하는 여러 공간의 음악을 살펴본다. 몇몇 작곡가의 곡은 국내에서도 한두차례 정도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이 음악들에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수히 많은 음악들이 펼쳐져있었을 공간으로 향하는 ‘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듣는 이들의 마음에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소리들이 새겨진다면, 이 특별한 여정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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