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된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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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된 가곡,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

랄프 고토니, 임선혜, 시모 메키넨 & 앙상블 오푸스
2016년 10월 5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야기는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시작된다. 음악계에는 커다란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음악은, 음악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표현하는가?’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대결에서는 브람스와 바그너라는 상징적인 두 작곡가를 필두로 팽팽한 의견대립이 이어졌다. 휴고 볼프(Hugo Wolf, 1860-1903)는 바그너의 옹호자였다. 텍스트와 음악, 무대 등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총체적인 드라마를 창작하겠다는 바그너의 꿈은 볼프의 꿈이기도 했다. 볼프는 드라마를 갈구했다. 때로 볼프의 음악은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에게는 시의 세계를 음악으로 생동하게 그려내는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바그너의 반대자들에게 이 재능은 곧 단점이었다. ‘음악은 다른 무엇을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에 동의했던 그들에게 볼프의 작품은 텍스트를 표현하는, 순수하지 못한 음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볼프의 주력 장르는 가곡이었다. 가사가 있는데 어떻게 이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을 것인가?

<이탈리아 가곡집>은 볼프의 야심작이었다. 독일의 시인 하이제(Paul Heyse)가 작자 미상의 이탈리아 구전 민요를 번역했고 볼프가 곡을 붙였다. 소박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총 46개의 짧은 가곡이 탄생했다. <이탈리아 가곡집>은 연가곡이 아닌 가곡의 모음집으로, 음악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뚜렷한 연속성은 없었다. 일관된 시의 화자도 없었다. 이 작품에서 볼프가 세심히 신경 쓴 부분은 바로 가사보다 음악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볼프는 음악이 가사의 내용을 그저 부연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능동적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피아노 파트도 가사를 돋보이게 하는 반주 역할이 아니라 드라마를 위한 뚜렷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작곡했다. 근본적으로 가곡인 이상 가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절대음악론자들과의 대립에 지친 것인지, 볼프는 한 편지에서 자신이 절대음악의 생각을 <이탈리아 가곡집>에 반영해 음악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러나 볼프의 야심과 달리 이 작품은 당대에 특별히 큰 화제를 일으키거나 엄청난 극찬을 받지는 못했다.

피아노에서 앙상블로, 가곡에서 드라마로

우리의 현재, 21세기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이 곡의 진가를 알아봤다. <이탈리아 가곡집>의 음악은 “마치 현악 4중주와 같은 명확한 텍스쳐”였고, 가사는 밝고 유쾌했으며, 가곡들의 나열인 줄로만 알았던 가곡집은 어떤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독일의 볼프 아카데미는 이 곡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2002년, 핀란드의 음악가 랄프 고토니(Ralf Gothóni)가 편곡자로 선정되어 피아노를 실내악 편성으로 바꾸고, 볼프 아카데미의 예술감독 하르트무트 횔(Hartmut Höll)은 곡의 순서를 완전히 재구성한다. 피아노의 타현은 현의 비브라토가 되고, 한 곡에 갇혀있던 그림 같은 한 장면은, 긴 이야기로 이어진다. 볼프가 절대음악적 특성을 부여하려 했던 <이탈리아 가곡집>은 다시 방향을 틀어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발화하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가곡 텍스트의 의뭉스러운 화자는 드라마 안의 생동하는 등장인물이 된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던 시의 낭송은 발화자의 대화가 된다. 새로 만들어진 이 내러티브는 꽤 재밌기까지 하다. 앙상블 오푸스가 이번 제15회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한 것은 바로 이 버전이다.

남녀가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고,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미 서로의 마음이 확실한 줄 알았던 남자의 생각과 달리, 여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첫 고백은 실패했지만 남자는 계속 자신의 마음을 알린다. 고심 끝에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사랑이 넘치는 나날이 이어진다. 남자는 잠시 군대에 다녀오게 되어 연인은 짧은 이별을 맞이하지만, 다행히 남자는 건강히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곧 가족 문제로 갈등이 생긴다. 한번 시작된 싸움은 주제를 바꾸어가며 계속 이어진다. 연애는 지긋지긋한 싸움으로 변질되고, 사랑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문득 연인은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라며 갑작스럽게 화해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싸움과 화해를 지겹게 반복하는 이 사랑 얘기는 친구의 연애담처럼 뻔하지만, 알면서도 몰입하게 된다.

극적인 연기와 앙상블, 그리고 말

무대 위의 임선혜와 시모 메키넨의 캐릭터 몰입도 상당했다. 성악가들은 연주 내내 사랑에 빠진 표정이었고, 특히 임선혜의 몇몇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가 온다 (…)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네”라는 대사에서는 살짝 뒤를 돌아 권혁주와 김상진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칼 한 자루를 들어 내 가슴을 꿰뚫어”라고 분노하는 대사에서는 노래가 끝난 후에도 화가 삭여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시모 메키넨이 임선혜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머릿결이 아름답다”고 노래할 때 임선혜는 행복한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등, 두 성악가는 생생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대 장치 하나 없는 콘서트홀에 보이지 않는 극적 세계를 만들어준 것은 앙상블이다. 현의 부드럽고 작은 비브라토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가 손가락으로 악기의 몸통을 치는 소리는 말발굽 소리를 묘사하는 등, 앙상블의 폭넓은 표현력은 효과적인 극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처럼, 한 대의 피아노에서 열두 개의 악기로 확장된 이 앙상블에서 취할 것은 음색과 표현의 다양성이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음량이었다. 피아노와 함께 연주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성악 선율인 만큼 앙상블 편성에서는 목소리가 악기 소리에 묻힐 위험이 있다. 하지만 앙상블 오푸스의 단원들은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연주자들이다. 백주영, 권혁주, 김상진, 김민지, 성민제, 조성현, 뱅상 티존, 김한, 곽정선, 리카르도 실바, 성재창, 김지인은 솔리스트로도 큰 무대에 오르는 쟁쟁한 연주자들로, 이들의 예리한 연주는 단연 이날 공연의 일등공신이었다. 종종 앙상블의 레이어가 두터워서 음량이 자연히 커지거나 성악과 음역이 겹칠 때가 있었는데, 단원들은 항상 서로의 소리를 세심히 들으며 절제된 음량 안에서도 밸런스를 효과적으로 유지했다. 작은 음량 안에서도 앙상블의 표현은 무척 다채로웠고, 성악과 앙상블의 조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훨씬 더 매끄럽고 부드러워졌다.

번역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의 소재는 소박한 사랑 이야기이다. 보통 가사의 번역은 지나친 격식체, 혹은 조금은 느끼한 말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일상어에 가까운 번역이 나왔다. 예를 들면, “기절초풍하는 거야”, “내가 제일 불쌍해” 등이다. 고결하고 이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연애담을 편안한 언어로 그려낸 이날 공연의 매력은 바로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였다.

이야기의 끝

<이탈리아 가곡집>의 이야기는 연인이 화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갑자기 왜 화해하게 되는지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본래 <이탈리아 가곡집>의 마지막 곡은 다른 곳에 애인이 많으니 이젠 네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공연에서 이 곡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으로 쓰였다. 행복한 사랑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오늘날, 이별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는지 공연의 마지막은 8번째 곡이었던 “이제 우리 평화 조약을 맺자꾸나”로 끝이 난다. 해피엔딩이 반갑기는 하나 이 갑작스러운 화해는 어딘가 찜찜하다. 이 불편함이 해소되는 것은 앙코르에서다. 앙코르에서는 <이탈리아 가곡집>의 1번이자, 공연에서도 첫 곡으로 연주된 “자그만 것들이 우릴 황홀케 하고”가 다시 연주된다. 연인은 갖은 고초를 다 겪고도 처음처럼 서로를 사랑한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노래하던 임선혜와 시모 메카넨이 마지막 앙코르에서만큼은 바로 옆에 서서 다정하게 노래하는 모습은 앞으로의 사랑을 약속하며 새로 출발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볼프가 원했던 바가 아니다. 원곡에는 뚜렷한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앙상블도, 해피엔딩도 없었다. 이 공연에서 절대음악적인 성격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이탈리아 가곡집>은 곡의 순서나 편성, 작곡가의 의도는 물론 장르까지 달라 보일 정도로 뚜렷한 내러티브를 가진 드라마로 변했다. 작곡가의 의도와 시대적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주관습에서는 이 공연이 과거의 것들을 ‘위배’한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변화가 오늘날의 청중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연주가 지금의 우리에게 더 풍성한 감각을 선사하는가? 만약 여전히 과거의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면, 이제 우리가 새롭게 뿌리내려보아야 할 곳은 ‘그때 그곳’이 아니라 바로 이 공연처럼,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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